지난 토/일 이틀간 아민이를 데리고 신나게 쏘다녔더니
월요일부터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토요일에는 아민이를 데리고 반포의 아민이 큰아빠댁에 다녀왔고,
그 날 우리집에서 아민이를 재운뒤(보통 때에는 주말에도 아민이 외할머니네서 재우는데 말이다.)
일요일 오전에는 교회에, 오후에는 호수공원에 다녀왔더니
남편과 나는 완전 파김치가 되었다.
아민이는 토요일 왕복 3시간이 넘는 장거리(?) 여행에도 꿋꿋하게 까불더니
그날 10시 경 차에서 잠이 들어서는 다음날 6시에 칼 같이 일어나 울어댔다.(배고프다고...)
그래서 우유를 200밀리 먹였더니 한 3분만에 먹더니 다시 지 혼자 엎드려서 잤다.
그렇게 한시간 가량을 더 자더니, 7시 무렵엔 본격적으로 기상하여 까불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보통 일요일엔 10시에나 일어나는데, 그 날은 완전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민이 뒤치닥거리를 해야했다.
아민이는 7시에 완전 기상후, 정말 한 시도 쉬지 않고 집안을 쏘다녔다.
면봉 통을 뒤집어서 다 헤집고, 옷들도 다 헤집고, 작은 방의 책도 다 끄집어 내고
꺼내준 pop-up book은 다 뜯어놓고...
심지어 "무거워서 못꺼내겠지..."하고 그냥 거실 탁자 아래에 넣어두었던
내 어릴적 앨범도 아무렇지 않게 꺼내서 의젓하게 넘겨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사진 몇 장 끄집어 내더니 찢으려고 한다.
그렇게 지치지 않고 까불던 아민이는 교회가는길에 유모차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그러나 20분도 채 안되어 우렁찬 찬송가 소리에 깨어나 버렸다.
상황파악하는데 몇 분 보낸 후, 남들 조용해 질때만 골라서 꼭 소리지른다.
결국 준한오빠가 아민이를 데리고 나갔고, 나도 설교만 겨우 듣고 나왔다.
아민이는 그 후 호수공원에 가서도 줄기차게 먹고, 놀고, 쌌고
우리는 서서히 지쳐갔다.
집에 돌아온 준한오빠와 나는 아민이를 엄마에게 데려다 줄 기운조차 없어서
소파에 쓰러져 있었는데, 아민이는 쌩썡하게 다시 한 번 집안을 뒤집었다.
결국 나와 남편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침대에서 쓰러져서 한 10분 잠이 들었고 아민이는
그 사이 (그래도 기특하게시리) 침대 앞에 앉아서 (다시 정리해둔) 면봉을 또 뒤집고 있었다.
잠시 자고 난 후, 재충전한 우리 부부는 아민이를 엄마에게 데려다 준 후에야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참고로 아민이는 할머니네 가는 동안 잠이 들어서 그 후로 한 시간 쯤 더 잔후
일어나 다시 저녁 활동에 돌입하였다. (외할머니네 서랍 뒤집기...)
정말 오랜만에 아민이를 우리집에 데려와서 재웠는데,
아민이의 예쁜 모습을 하루종일 내 집에서 보는 대가는 정말 대단했다.
그래도 며칠동안 시간을 많이 보내면, 아민이가 와서 착착 안기고 애교도 많이 떤다.
이래서 모든 일은 대가가 있고, 힘든 만큼 보람과 기쁨도 큰 모양이다.
애 키우면서 한계에 많이 부딪히지만 그만큼 배우는 것도 참 많은 셈이다.
옛날 옛적 선비들이 글을 쓰는데 필수적인 도구 네 가지를 문방사우라고 했다는데,
나의 문방사우는 무엇일까를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물론, 선비들의 문방사우가 글쓰는 즐거움을 함께 하는 벗 같은 개념이라면
나의 문방사우는 딸리는 기억력을 보조하고, 논리적 이해를 돕는 상당히 실용적인 개념이라는데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나의 문방사우는 1. 형광펜 2. Index tag 3. 3색볼펜 4. 포스트잇 이다.
형광펜, tag는 빨리 찾기 위해 필요하고 색볼펜과 포스트잇은 나의 재해석과 보충설명을 적어놓기 위해 필요하다.
결국 이 문방사우들은 모두 text를 내 스타일로 재해석, 재편집하는데 필요한 supporter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새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무거운 텍스트 북과 문방사우를 일일이 들고 다녀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electronic book으로 노트북에 다 저장하고, 디지털 하이라이트와 인덱스로 색인을 달고, 테블릿으로 포스트잇하면 안될까?
디지털 북이 불편한 점은 뭐 눈이 아프다도 있겠지만, 사실 "손맛"이 없어서 왠지 기억을 하거나 나만의 버전으로
해석하는데 답답하다는 점이다. 책을 읽다보면 줄도 치고, 노트도 하고 꼬리표도 달고 그런맛이 있어야 "내 책, 내 지식"이 되는 것 아닐까.
시험공부하면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시험 기간엔 왜 이리 눈 앞의 정보보다 다른 곳에 관심이 많아지는지...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살면서 '기억'을 많은 부분 기계에 의존하게 되고
급기야 치매환자처럼 자기 전화번호와 같은 일상에 관련된 기억들을 잘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굳이 그런 용어에 그런 설명까지 곁들이지 않아도 나는 이런 증상을 너무 잘 안다 ㅡ.ㅡ
조금 전 이 블로그에 로긴하기 위해서 나는 비밀번호를 한 10개쯤 쳐 보았다.
겨우 운좋게 비밀번호를 찾아서 접속하자, 원래 쓰려고 했던 내용을 까먹어 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디지털 치매를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 삼천포로 빠져서 "기억"이라는 재미있는 현상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떠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없다. 4살 때의 소소한 기억까지 다 하고 있는 우리 오빠에 비해
나는 학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은 거의 전무하다. 학교 들어가고 난 후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도 한 이 년 안보고 연락 안하면, 왠만큼 친했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름도 잘 기억하지지 못한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 성함도 기억나는 분은 딱 한 분 뿐이고, 고등학교 동창들은
길에서 지나가다 만나도 이름을 몰라서 부르지 못한다.
왜 그럴까?
범람하는 디지털 기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 내가 기억력이 안좋은 때문일까?
애 낳고 이렇게 된 걸까?
어릴 때부터 쭉 그랬던 것으로 볼 때, 요즘 환경의 변화로 그렇게 된 건 아닌것 같고
그래도 단기 기억력은 좋은 편인 것을 볼 때 - 시험은 곧잘 본다 - 역시 꼭 타고난 기억력 탓은 아닌것 같다.
그렇다면 왜?
내 추측으로는 "나의 선택" 때문일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성향, 관심, 이해관계 등의 영향으로 내가 "기억하지 않기로 선택"했기에
내 기억장치에 기록되지 않았거나 쉽게 지워져 버렸을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기억들은 무의식적으로라도 "일부러 지워버리려 애썼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셋팅한 자아상에 흠집을 내거나 배치되는 기억들은 아마 나도 모르게 지워버렸을 것이다.
말이 길어져서, 자꾸 꼬여가므로 여기서 빨리 결론을 내리자면,
내가 지금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의 선택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어떤 노력이 가해진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억이라는 것은 절대 객관적이지도 않고 믿을만하지도 않은 것이다.
2003년인가 홈페이지를 만든 적이 있다. 선배의 서버에, 선배의 기술(?)로 만든 홈페이지였으나
어쨌든 bgm도 열심히 찾고(불법다운로드) 그림도 찾아(역시 불펌) 걸었더랬다.
글도 잊을만하면 올려서 일 년 정도 뒤에는 나름대로 꽤 많은 글이 쌓였었는데...
그런데 역시 나의 게으름이 문제다.
2003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격동의 시간을 보내느라,
관심을 뚝 끊고 있었더니 이제 그 url마저 가물가물하다.
물론 DB는 통째로 삭제된 후이므로 url을 기억한다고 해도 별 의미는 없다.
서두가 길었다.
결론은 이제 새로 시작한 블로그에 2007년부터의 삶이 담길 것인데,
2003~2004년의 뼈아픈(?) 과거를 거울삼아 착실하게 관리해 보련다 하며
두 주먹 불끈 쥐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자신을 돌아보며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자 한다지만
어쨌든 블로그란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므로 나와 나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에 대해
간단한 소개말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름 : 필명은 moveson이다. 왠지 본명을 밝히는게 꺼려지므로, 필명으로 하겠다.
moveson은 카트라이더 ID였다. 그 이외의 모든 ID는 거의 rocksj이다.
rocksj는 중복검사에 걸려 못쓰게 되었다.
현재 직업 : d'strict에서 한 4년(휴직기간 포함) 몸담았다가, 현재는 학교 다닌다.
카이스트 테크노 MBA에 다니고 있다.
가족관계 : 남편과 돌쟁이 딸아이가 있다. 시집을 일찍 가서 아직 20대에
"생명창조"라는 위대한 업을 이루었다. 내가 한 일 중 가장 대단하고 멋진 일이다.
앞으로 글, 사진, 동영상(?)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내 삶의 단편들을 열심히 기록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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